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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창조이야기


두가지 창조이야기



창조이야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일관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반된 두가지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는 창세기 1장1절 부터 2장4절 상반부까지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세상은 물이 가득찬 모습으로 나타난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창 1:1-2)

위 구절에서 하나님은 물로 가득찬 세상에 나타나 창조행위를 시작하신다. 첫번째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마른 땅을 내어주기 위해 물을 제거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창 1:6)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1:9)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조건을 위해 물을 제거하고 마른 땅을 내어 주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면 두번째 창조 이야기는 창조전의 세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창2:4-6)

여기서 하나님은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땅에 나타나신다. 물을 솟구치게 하고 에덴에서 강하나가 흘러 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줄기의 강으로 갈라져 온땅을 적시게 하신다 (창2:6-14)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마른땅에 물을 솟구치게 하고  땅을 적시게 한다.




창조이야기가 서로 다른 이유

첫번째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빌론 포로기때 쓰여진 것이다 (BC 587~538) 이때 거주하던 지역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만나는 하류의 범람 지역으로써 빈번한 홍수로 물바다가 되어 삶의터전이 황폐해져 버리던 지역이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범람하는 강의 무서운 모습을 앗수르 제국의 무서운 공격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사 8:7)





4대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비옥한 토양과 절대적 생존의 기준인 물의 존재는 사람들을 정착시키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혹독한 자연의 도전을 받는 지역이기에 그와 관련된 학문과 문화들도 발달하게 된다. 때문에 측량,건축,수학이 발달하고 물을 막기 위해 토목이 발달하고 일기를 알아야 하기에 천문학이 발달하여 강을 접한 지역은 고등 문명의 발생지가 되곤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배경의 바빌론 강가에 포로되어 있었다. 물이 범람하고 홍수가 일어나는것은 이들에게 혹독한 시련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이들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마른땅을 내어 안락한 삶을 유지시켜 주는 분'으로 고백한다

반면 두번째 창조이야기는 다윗왕조 때(BC 1000~ 921)에 수집된 이야기로 메마른 가나안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나안땅은 사막지대로 물이 몹시 귀한 땅이고 드물게 있는 샘과 오아시스가 그들의 귀한 생존조건 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1장과는 반대로 전개된다. 동산 한가운데 샘이 솟게 하고 사방으로 강이 흐르게 묘사한다. 창조순서도 다르다. 첫번째 창조이야기는 1일에 빛을 만들고 2일에 궁창을 만드시고 3일엔 마른땅을 구별해 내신다. 그리고는 4일에 1일의 창조물인 빛을 내는 해와달 별을 만드시고 5일은 2일의 창조물인 궁창에 어류와 조류를 채워넣으신다. 6일에는 짐승들과 사람을 창조하여 3일에 만든 육지위에 살게 하시고 7일엔 안식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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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2일            3일            4일            5일           6일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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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궁창(창공)    땅(바다)     해,달,별    물고기,새   짐승,사람       안식
                         식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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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창조이야기는 진화론의 순서와도 유사하다. 하나님은 어,조류,짐승을 차례로 만드시고 최종적으로 사람을 만드신다. 반면 두번째 창조이야기는 가장 먼저 사람이 창조되고 그다음 식물,동물을 만드신다. 이는 중요하다 생각되는 순서 즉 인간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순서대로 배치되있을뿐이다. 이처럼 첫번째 이야기가 좀더 과학적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400년 이상 후대에 형성되었고 당시 최고의 문명지였던 바빌론에서 쓰였기 때문에 동식물의 구조나 조직에 대해 다윗왕조때보다 깊은 이해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위에서 보듯이 창세기 초반만 해도 두가지 창조이야기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학문적으로는 첫번째 이야기는  바벨로 포로기에 사제들이 집대성한 것으로 제사문서(P자료-Priestly Writing)로 불리운다. 이자료엔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으로 표현한다. 두번재 창조이야기는 다윗과 솔로몬 왕조때 통일왕국을 형성한 후 이스라엘의 전통과 역사적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고대부터 내려오던 단편들을 집대성한 자료로써 야훼문서(J자료-Jahweh)로 불리우며 여기엔 하나님의 이름도 야훼로 명기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말 번역에는 하나님으로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성서원문은 1장과 2장의 하나님 이름이 다르며 문서의 특성이나 성격 자체도 다른점을 보인다.




창조신앙과 신앙고백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우주가 생성되던 그때의 누군가 목격하고 쓴 것일까? 물론 아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야 누가 태초부터 목격하고 기록을 할수 있겠는가..그럼 "비밀을 알려주마 받아적어라"라고 명하시고 무아지경으로 받아쓰도록 하게 하신걸까? (일반적으로 교회는 후자를 정설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조종하여 관리하였다면 위처럼 대치되는 두가지 창조이야기는 왜 탄생되었을까? 한 저자가 기록했다면 위처럼 서로 모순된 이야기가 대치되진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을 부르는 명칭도 통일시켰을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이야기는 태초의 기록이 아니고 역사의 중간에 나온 신앙고백들이다. 누구도 태초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격담으로 구술할 순 없다. 또한 성서는 통일된 지휘를 받아 일관된 자료로만 집대성된 것도 아니다.이것은 억지가 아니라 성서자체가 그렇게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부정하고 싶어도 사실이다. 하나님은 시대를 꿰뚫어 불변의 진리를 주입시키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마다 상이한 자연,문명,생활환경 아래에 인간들이 저마다 다른 사고와 생각으로 자신을 보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신다. 각자 다른 시대와 조건아래 인간은 가장 숭고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고백과 성찰로 풀어낸다. 이런 고백들이 모여 성서가 되는것이다.


창조이야기가 이처럼 상이한 두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것도 하나님의 창조를 위협하는 행태가 시대마다 다르고 자연의 조건,인간의 범죄,자연의 재앙 등도 시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창조이야기는 일관된 하늘의 비밀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다른 시대 다른 위기들에 대한 신학적 답변과 고백들이다.


성서의 창조이야기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나왔으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투쟁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힘은 거대한 자연앞에서 왜소하고 보잘것 없어 위협적인 자연의 공격엔 굴복할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앞장서 물을 막기도 하고 때로는 사방에 물줄기를 내신다는 고백은 분명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들의 창조고백은 혹독한 자연의 시련 앞에서 낙망하는 개인들에게 새로운 의지를 불러 일으키고 파괴와 위협에 맞서 투쟁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각기 다른시대 다른 위협에 대해 서로 다른 창조 이야기로 대치된 이유이다..



흔히 성경속에서 과학적인 진화나 우주생성의 비밀,공룡등을 찾으려는 연구들을 하려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이 아니다. (중동의 사막지대에서 북극곰을 방주에 태웠을까? 무의미한 호기심이다) 그런 의문들은 20세기 현대에 와서야 갖게된 것들이다. 진화론 도출의 이전 시대 하물며 성서시대에는 온 우주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들의 고백 하나하나는 오로지 자신들의 신앙적 성찰과 믿음의 확신을 나타낸 것이지 무엇을 증명한다거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를 있게 하셨고 세상을 만드셨는데  위기속에 그저 내버려 둘리 없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실것이다" 라는 신앙고백에서 나온것이다. 바로 이런 고백이 창조신앙을 형성한 것이다.



위기와 시련속에서 투쟁하고 이겨내지만 그들은 내가 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성서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다" 라고 말할때 그것은 부단히 노력하고 성찰하는 인간의 삶과 노력에 대한 표현의 최고 정수라 할수 있다..오히려 하나님께서 앞서 행한다는 핑계로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를 정죄하며 실천없이 오로지 앉아서 기도만 하면 된다는 태도는 전혀 성서적이지 않다. 성서는 이러한 인간의 투쟁 한복판에서 자신들의 삶의 성찰들은 엮은 최고의 고백들이다. 이것이 성서 기록들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조신앙은 그 시대의 위기에 맞서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고 지켜가기 위한 인간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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